자기희생과 중독: 착한 사람이 회복에 더 취약한 이유
‘고맙다’는 말을 위해 계속 달리는 사람들
친구의 고민을 오랜 시간 들어 줍니다. 후배에게 한턱냅니다. 직장의 성가신 일을 떠맡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아주 조금 가벼워집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 어쩐지 몸이 무겁습니다.
중독으로 힘들어하는 사람 중에는 이렇게 ‘남에게 지나치게 헌신하는’ 패턴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단순한 다정함이라기보다, 더 깊은 무언가가 그 행동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중독은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고통에 대한 ‘해결책’으로 시작된다는 관점이 있습니다. 자기희생 또한 마음에 뻥 뚫린 구멍을 메우기 위한 장치로 작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조건부 자기가치
자신에게서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헌신하고 ‘고맙다’는 말을 받음으로써, 아주 잠깐만 ‘여기 있어도 된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 한순간이 그리워 또 헌신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조건부 자기가치(contingent self-worth)라고 부르는 상태입니다. Crocker & Wolfe(2001)의 연구에 따르면, 자신의 가치를 외부의 인정에 의존하는 사람일수록 스트레스나 우울의 위험이 높아집니다.
‘미움받고 싶지 않다’, ‘버림받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도 행동을 강하게 옭아맵니다. 상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자신을 내어 줍니다. 그렇게 붙잡아 둔 관계는 약해서, 상대가 떠나면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에 더욱 매달립니다.
또 하나 까다로운 것이 자기희생 뒤에 숨은 ‘통제 욕구’입니다. 돕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상대의 행동이나 감정을 통제하고 싶어 합니다. 임상 현장에서는 공동의존(codependency)이라고 부르는 패턴으로, 베풂으로써 자신의 불안을 달래려는 구조는 중독 그 자체와 매우 닮았습니다.
‘뭔가 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한다’는 마음의 출처
한턱냅니다. 돈을 빌려줍니다. 부탁받지도 않았는데 챙겨 줍니다.
‘베풀어야만 사랑받는다’고 믿는 사람의 상당수는 어린 시절에 무조건적인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Bowlby의 애착 이론이 보여 주듯, 어린 시절에 안정된 애착을 형성하지 못한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뭔가 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한다’는 불안정한 패턴을 반복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거래입니다. 거래는 언젠가 무너집니다.
뇌 속에서 일어나는 일
자기희생과 중독의 관계는 감정의 문제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뇌의 작동 방식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남을 돕고 감사를 받으면 뇌 안에서 도파민이 분비됩니다. 봉사 활동 뒤에 느끼는 고양감, 이른바 ‘헬퍼스 하이’가 그것입니다. 그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닙니다. 다만 이 쾌감은 도박이나 알코올로 활성화되는 보상계와 일부 겹칩니다. ‘누군가에게 감사받는다, 기분이 좋다, 더 하고 싶다’는 루프가 중독과 닮은 보상 학습 패턴에 편입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게다가 자기희생적인 사람은 만성적으로 스트레스를 안고 있습니다. 자신의 욕구를 계속 뒤로 미루면 당연한 일입니다. 자신을 계속 억누르면 심리적 소진이 쌓이고, 충동을 멈추는 브레이크가 잘 듣지 않게 됩니다. 만성적인 스트레스가 전전두엽의 기능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에서 확인되었습니다(Arnsten, 2009). 그 결과 그만두고 싶은데 그만둘 수 없는 상태가 점점 가속됩니다.
헌신한 끝에 무엇이 남는가
남에게 헌신해서 얻는 것은 일시적인 안도감과 ‘나는 도움이 됐다’는 희미한 충족감입니다.
한편, 감사가 돌아오지 않았을 때 남는 것은 ‘그렇게나 해 줬는데’라는 허무함이나 분노입니다. 그 감정을 처리하기 곤란해 중독 행동으로 도망치는 패턴은 드물지 않습니다.
돕는 것으로만 성립하는 관계는 어딘가에서 일그러집니다. 상대에게도 의존심을 심어 버립니다. 남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며 마음의 빈틈을 메우려 해도, 근본적인 문제는 보이지 않는 채로 계속 남습니다.

패턴을 바꾸기 위해
남을 돕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자신을 깎아내고 있다면 멈춰 설 필요가 있습니다.
비행기 안전 영상에서 말하는 ‘먼저 본인의 산소마스크를’이라는 원칙은 중독 회복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지금의 나에게 이걸 할 여유가 있는가’, ‘이걸 한 뒤에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물음이 출발점이 됩니다.
무엇이든 떠맡지 않아도 됩니다. ‘미안해, 지금은 좀 어려워’라고 말하는 것은 상대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상대 둘 다를 지키는 행위입니다. 심리학자 Henry Cloud는 저서 『Boundaries』에서 ‘건강한 경계선은 거부가 아니라 양쪽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거절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만, 그 죄책감을 계속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상대에게 감사받고 싶다’, ‘미움받고 싶지 않다’. 만약 그 동기가 먼저 온다면, 그것은 돕는 것일까요, 아니면 자신의 불안을 메우는 작업일까요. 동기를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것은 무서운 작업이지만, 거기에 마주하는 것이 회복의 커다란 한 걸음이 됩니다.
자신의 패턴은 스스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상담사나 전문가에게 이야기해 보면 뜻밖의 발견이 있습니다. 피어 서포트, 같은 경험을 가진 동료와의 연결이나 QuitMate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가 자신의 행동 패턴을 알아차리는 계기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신을 채우는 것은 이기심이 아니다
자기희생적인 도움은 곁에서 보면 아름답습니다. 다만 그 이면에서 자신이 너덜너덜해지고 있다면, 그것은 누구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먼저 자신을 채우는 것. 그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주위를 진정한 의미에서 떠받치기 위한 토대 만들기입니다.
참고문헌
- Crocker J, Wolfe CT. “Contingencies of Self-Worth.” Psychological Review. 2001;108(3):593-623.
- Arnsten AFT. “Stress signalling pathways that impair prefrontal cortex structure and function.” Nature Reviews Neuroscience. 2009;10(6):410-422.
- Bowlby J. Attachment and Loss, Vol. 1: Attachment. Basic Books, 1969.
- Cloud H, Townsend J. Boundaries: When to Say Yes, How to Say No to Take Control of Your Life. Zondervan, 1992.
- Post SG. “Altruism, Happiness, and Health: It’s Good to Be Good.” International Journal of Behavioral Medicine. 2005;12(2):66-77.
- Koob GF, Volkow ND. “Neurobiology of Addiction: A Neurocircuitry Analysis.” The Lancet Psychiatry. 2016;3(8):760-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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