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회복의 힌트: '돌아보기'가 재발을 막는다 (행동경제학)

시험 채점을 자기 신고제로 하면 사람은 얼마나 부정행위를 할까.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가 MIT와 예일대학교 등에서 실제로 해 보았더니, 예상대로 점수를 부풀리는 학생들이 나왔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지금부터다.
‘도덕의 가르침’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부정행위가 사라졌다
시험 직전에 ‘모세의 십계명을 최대한 떠올려 보세요’라는 한마디를 덧붙인 그룹에서는 부정행위가 거의 사라졌다. 십계명이란 기독교의 도덕률로, ‘거짓말하지 말라’ ‘훔치지 말라’ 같은 내용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초등학교 도덕 시간에 나올 법한 가르침에 가깝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십계명을 정확히 말할 수 있었던 학생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내용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종교적인 지식이 효과를 낸 것이 아니다.
애리얼리는 다른 실험에서, 종교와 무관하게 ‘부정행위를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서약서에 서명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같은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다.
즉, 십계명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종교를 믿고 있는지도 상관없었다. ‘올바르게 행동하자’라고 한순간이라도 의식을 향했다는 것 자체가 행동을 바꾼 것이다.
※ 애리얼리의 부정행위 연구에 대해서는 2021년에 일부 데이터의 신뢰성이 문제로 지적되었다(Simonsohn et al., 2021). 십계명 실험 자체는 직접적인 대상이 아니지만, 유의할 필요가 있다.
충동과 행동 사이에 ‘여백’을 만든다
이 실험 결과는 중독 회복과도 이어지는 이야기다.
중독과 마주하다 보면 ‘의지의 힘으로 어떻게든 해 보자’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이 잘되지 않는 경우는 많다. ‘나는 안 된다’며 자신을 탓해 버리는 패턴에 빠지기도 한다.
심리학자 골비처 등의 연구에 따르면, ‘그만두자’라는 막연한 결심보다, ‘마시고 싶어지면 우선 물 한 잔을 마신다’ ‘파친코 가게 앞을 지나가면 심호흡을 한다’처럼 구체적인 상황을 미리 상정해 두는 편이 목표 달성률이 훨씬 높다. 이것은 실행 의도(implementation intentions)라고 불리는 방법으로, 십계명 실험과 구조가 비슷하다. 거창한 각오는 필요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가’를 미리 생각해 두는 것만으로 충동과 행동 사이에 작은 여백이 생긴다.
엄격한 반성보다, 다정한 돌아보기가 재발을 막는다
텍사스대학교의 크리스틴 네프 교수 등의 연구에서는 셀프 컴패션(자신을 향한 다정함)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통해 자기비판과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것이 확인되었다. 스트레스는 중독 행동의 재발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이 발견은 회복과도 직결된다.
‘또 반복해 버렸다’라며 자신을 몰아붙이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늘고, 그 스트레스에서 다시 중독 행동으로 도망치고 싶어진다. 악순환이 된다.
반면 ‘힘들었지. 하지만 알아차린 것만으로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라고 돌아볼 수 있으면, 그것은 ‘반성’이 아니라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기회가 된다.
반복해 버린 날을 ‘실패’가 아니라 ‘데이터’로 본다. 무엇이 계기였는지, 어떤 기분이었는지. 그렇게 관찰해 가다 보면 중독의 근본에 있는 문제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돌아보기를 시스템으로 만든다
돌아보기를 ‘의지의 힘’으로 계속하는 것은 어렵다. 시스템으로 일상에 녹여 두는 편이 오래간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경험담을 읽고 ‘그러고 보니 나도 그만두고 싶었지’라고 떠올린다. 과거에 자신이 쓴 말을 다시 보며 마음이 정리된다. ‘오늘은 ○일째’라는 숫자가, 지금까지 계속해 온 자신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피어 서포트(동료끼리의 지지)가 치료의 지속률을 높인다는 연구가 있는데, 그 효과의 일부는 동료의 존재가 ‘생각을 되짚어 보는 계기’를 자연스럽게 제공해 준다는 점에 있는지도 모른다. QuitMate와 같은 커뮤니티에서 게시물을 읽거나 반응을 보내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돌아보기의 계기(트리거)가 되고 있다.
정리
십계명 실험이 보여준 것은, 행동을 바꾸는 데 ‘강한 의지’나 ‘완벽한 계획’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하루에 한 번, 몇 초면 된다. ‘나는 왜 그만두고 싶었는가’에 닿는 것만으로 그날의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십계명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했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참고 문헌
- Ariely, D. Predictably Irrational: The Hidden Forces That Shape Our Decisions. HarperCollins, 2008.
- Mazar, N., Amir, O., & Ariely, D. “The Dishonesty of Honest People: A Theory of Self-Concept Maintenance.” Journal of Marketing Research, 45(6), 633–644, 2008.
- Gollwitzer, P. M., & Sheeran, P. “Implementation Intentions and Goal Achievement: A Meta‐Analysis of Effects and Processes.” Advances in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38, 69–119, 2006.
- Neff, K. D., & Germer, C. K. “A Pilot Study and Randomized Controlled Trial of the Mindful Self-Compassion Program.” Journal of Clinical Psychology, 69(1), 28–44, 2013.
- Ariely, D. The (Honest) Truth About Dishonesty. Harper, 2012.
- Simonsohn, U., Simmons, J. P., & Nelson, L. D. (2021). “Evidence of Fraud in an Influential Field Experiment About Dishonesty.” Data Colada, #98.
이런 글도 추천합니다
금주·회복은 '원래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술을 끊으면 원래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 어느 날 깨닫는다. 돌아가고 싶었던 그 자리의 나는, 이제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할 나였다. 금주와 회복은 과거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결점까지 끌어안고 살아가는 연습을 이어 가는 것이다.
중독 회복, 온라인 커뮤니티가 대면 치료보다 오래가는 이유
통원은 주 1회 50분, 온라인 커뮤니티는 24시간. 중독 재발은 치료와 치료 사이에서 일어난다. 더 오래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이고, 지속되는 것이 곧 효과가 있다는 뜻인지 전문가들의 답이 갈리는 지점을 데이터로 짚는다.
남을 응원한 사람일수록 회복하고 있었다|중독 앱의 의외의 데이터
남을 응원한 사람일수록 회복이 빨랐다. 중독 극복 앱 커뮤니티에서 남에게 댓글을 쓴 사람일수록 연속 기록이 길었고, 앱 이용 빈도를 맞춰도 차이가 남았다. 599명의 데이터와 90년 전부터의 과학이 겹친다.
자책이 중독 회복을 막는 이유와 재발에서 벗어나는 법
중독 회복에서는 재발 자체보다 '나는 글렀어'라는 자책이 더 큰 걸림돌이 됩니다. 자책이 스트레스 호르몬을 늘려 충동을 키우는 원리와, ABC 분석으로 자신의 패턴을 돌아보는 방법을 설명합니다.